덴마크 코하우징
덴프스'픽 곁에 두고 싶은 물건, 자주 걸음하게 되는 공간, 내내 곱씹게 되는 책 속 문장...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가 가득한 때, 무수한 선택지 사이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을 세심히 골라 소개합니다. 새로운 경험이 되어 줄 덴프스'픽을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관계’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가족이나 친구를 생각합니다. 바로 옆, 또는 한 건물에서 마주치는 이웃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문 하나만 닫으면 완전히 분리되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가까이 살면서도 더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관계‘가 중심이 되는 5월, 집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설계해 이웃과의 연결을 삶의 중심에 놓은 덴마크의 공동 주거 문화를 들여다봅니다.
관계의 기원: 따로, 또 함께 사는 법
현대적 의미의 ‘코하우징co-housing’ 개념은 덴마크에서 두 개의 큰 움직임이 합쳐지며 처음 탄생합니다. 먼저 1964년, 건축가 얀 구드만-회이어Jan Gudmand-Høyer는 친구들과 기존 주거 모델의 대안으로 유럽 최초의 공용 주택 프로젝트를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1967년, 작가 보딜 그라에Bodil Graae는 “아이에게는 100명의 부모가 필요하다“는 기사로 전통적인 핵가족 구조에 질문을 던졌고요. 두 그룹이 뜻을 같이 하며 코하우징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물로 1972년 덴마크에 세워진 최초의 코하우징 단지 ‘세테담멘Sættedammen‘은 지금도 운영 중입니다. 거대한 공용 주방과 식당을 중심에 둔 설계를 바탕으로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입주민들은 함께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고, 노인을 챙기며 살아왔죠. 이웃이 가족이 되는 구조를 건축 언어로 구현한 곳, 세테담멘은 지금도 그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관계의 지속: 식탁에서 시작되는 연결
덴마크 코하우징의 일상을 지탱하는 핵심은 ‘공동 저녁 식사Fællesspisning‘라는 구체적인 시스템입니다. 주민들은 순번에 따라 팀이 되어 식사를 준비합니다. 수십 명 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분명 고되지만, 나머지 날들에는 퇴근 후 이웃이 차려준 따뜻한 밥상을 마주할 수 있죠. 식재료를 대량 구매해 비용을 절감하고, 매일 반복되는 가사 시간을 단축하는 효율적인 선택이기도 해요.
이 단순한 루틴은 편의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함께 둘러앉아 나누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안부가 자연스럽게 오가니까요. 홀로 밥을 먹는 순간에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관계의 확장: 노년의 고립을 막는 ‘시니어 하우징‘
이러한 유대는 최근 덴마크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는 ‘시니어 하우징’ 모델로 확장됩니다. 전체 코하우징의 약 60% 이상이 시니어 중심이거나 세대 통합형으로 전환 중일 만큼 그 호응이 뜨거운데요. 아침에 일어나 정원을 가꾸며 이웃의 기척을 살피고, 공용 공간에서 취미를 공유하는 일상. 이는 국가의 복지 예산이 미처 닿지 못하는 ‘정서적 돌봄‘의 공백을 이웃 간의 자발적인 관계가 채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관계의 설계: 마주침을 유도하는 철학
이 모든 관계는 단순히 주민들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습니다. 코하우징 단지의 공간 설계에는 주민들이 마주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치밀한 철학이 담겨 있는데요. 주차장은 단지 외곽에 두고 공용 세탁실과 텃밭을 한가운데 배치해, 집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이웃과 마주치게 만드는 식입니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공간을 더 넓히고 견고하게 채우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 풍요로운 삶은,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고 일상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